1908년 여성들의 행진, 그리고 2010 한국 여성의 삶


정춘숙(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며칠 후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여성동지들과 함께 우리들에게는 재미나고, 우리 사회에는 때로 부담스럽기도 한 한국여성대회가 열린다. 벌써 26회를 맞는 한국여성대회를 생각하면 한편 가슴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 울적하기도 하다.

몇 년전 여성대회에서 꽃을 들고 행진하다 한 꼬마 여자아이에게 꽃을 전해주자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에게 그의 어머니가 우리가 나눠준 전단지를 읽고 설명하는 걸 보고 가슴 뿌듯했다. 대회에 참석한 한 회원은 여성대회에 참석한 소감을 묻자 ‘여자로 태어난게 자랑스럽고, 우리 단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3.8여성대회는 여성들에게는 그날을 역사적으로 기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즐기는 자리인 것 같다.

올해는 3.8 여성대회가 우리의 현실을 더욱 강하게 직시하는 대회가 될 것 같다. 수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최근 온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낙태’논쟁이 그 대표적 경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절차가 거의 대부분 무시되었지만 특별히 여성 관련한 거의 모든 정책은 없거나 과거 보수적 내용으로 회귀해 가고 있다.

낙태 논쟁은 서구의 경우를 봐도 길고 지난하며,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서로 다른 두 입장이 만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2009년부터 이 문제를 사회에 제기하고 매우 쎈세이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동료 의사들을 고발한 프로라이프 의사회다. 그들은 ‘생명권’을 이야기 하면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주장들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논쟁의 상황속에 이문제의 1차적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다는 것이다. 정부의 관련 위원회도 종교계나 의사회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임신, 출산,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고, 여성들의 인생에 있어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의가 이 문제의 1차적 주체인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논의 되고 있지 않다. 우리사회의 보수적인 여론의 흐름이 여성들로부터 자기 몸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아 ‘내몸이 내몸이 아닌’ 것으로 만들며 여성이 몸을 사회가 통제하는 것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은 낙태하는 여성들 중 기혼이 58%, 미혼이 42%이라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피임을 잘 하면 되는데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낙태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생각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낙태를 피임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한바가 있는가? 여자들이라면 대부분 안다 산부인과 가는 것이 얼마나 고심 끝에 가게 되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낙태가 얼마나 여성들의 몸에 많은 상처를 남기는 것인지를 말이다.

한편 결혼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성관계와 피임에 임신 출산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결혼한 여성의 약 30%가 남편의 완력에 의한 강제적 성관계(우리는 이것을 아내강간이라고 부른다)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필자의 주변에도 남편의 강제적 성관계에 의해서 임신이 되었고,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한 경우가 있다. 아직까지도 많은 기혼여성들이 피임의 책임을 혼자 지고 있으며, 양육의 책임 역시 여성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가족간의 권력의 문제,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들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 여성에게 임신했으니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강제는 도대체 누가 무슨 권한으로 강요한단 말인가? 이것은 간단히 말해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혹은 프로라이프 의사회, 혹은 우리사회가 살아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인가?

낙태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 누구보다 여성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대안은 매우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할 뿐 만 아니라 더욱 악화 시킬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은 산부인과에서 낙태수술을 꺼려하고 있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는 강간피해자들도 낙태를 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다.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말에 절망한다. 잘못하면 강간피해자가 가해자의 아이를 낳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위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3월1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불법인공중절예방 종합계획’은 매우 미흡하며 여론 무마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보건복지부는 종합계획에 먼저 긴급한 상황에 놓인 성폭력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낙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을 분석해 실효성 있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낙태논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전면화 되지 않았어도 논쟁은 늘 있어 왔고, 늘 줄다리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 회기적 태도와 분위기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성폭력 예방교육에 외쳤던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간단한 명제가 너무나 절실한 때이다. 여성에게 원치 않는 출산을 강요하는,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닌 이 사회일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여성의날 여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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