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한국여성대회 (2011)/보도자료,기고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24 [오피니언] 3월8일의 ‘시크릿 가든’
  2. 2011.03.24 [기고]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김주원은 서로 몸이 바뀜으로써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길라임의 몸에서 피멍과 상처를 보고서야 끈떨어진 가방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헤아리고, 김주원의 ‘댁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념의 집이 아닌’ 호화주택에 살아봄으로써 동화 속에서 안하무인이 된 사회지도층을 수긍하게 된다.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아무리 학습을 하고 노력을 해도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체험만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쳐준다.


남자들은 말한다. 여자들이 다 해먹는다고, 남자들이 역차별당한다고, 여성운동은 접고 남성운동이 일어나야 공평하다고. 제법 개명했다고 자부하는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성차별의 이슈는 신문·방송에서 비호감의 메뉴가 된 지 오래다. 혹시 여성이 차별을 당했다면 개인적인 능력 부족 탓이라고 잘나가는 ‘알파걸’들을 증인으로 들이댄다. 이런 분위기에 지배당한 여자들은 ‘네 말 다 맞아’라며 고개를 떨군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니들은 이미 여자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커리어 우먼이라 불리며 일하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니 커리어를 쌓고 싶어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살림과 아이를 도맡으며 돈도 벌어야 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게는 비정규직도 ‘아이고, 하느님’이다. 취업을 원하면서 외모에 선투자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스펙’ 결함이다. 여자의 날씬한 몸을 찬양하는 사회는 여자의 임금도 남자의 절반 이하로 가볍게 매겨준다. 유방암 발병률은 OECD 국가 중에 2위이며 그 증가율은 가파르기만 한데 ‘설마 내가’만이 유일한 자구책이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은 진작에 만들어졌지만 용산에는 여전히 붉은 등이 치열하다.

이런 현실을 몰랐다고? 이건 시크릿 가든이 아니다. 공개된 가든이다. 다만 남자들은 알 이유가 없었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 일도 아닌 것을 왜 알아야 하나?’ 여자들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쉽게 바뀔 현실이 아닌 바에는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왜? 여자가 행복하지 않은 세상은 가족에게도 나라에도 미래가 없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저 출산율을 보라. 자신의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기저귀 값 몇 푼에 생명을 책임질 셈법은 아인슈타인도 찾아내지 못할 성싶다.

3월8일, 시크릿 가든이 열린다. 뉴스에는 당연히 안 나오고 드라마에도 없는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역으로 여성들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날, 1908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노동자 1만5000여명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위해 빵과 장미를 들고 행진한 것을 시작으로 113년째 이어지는 세계 여성의 날. 중국,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캄보디아, 러시아에서는 국가 공식휴일이며 밸런타인데이처럼 여성들이 축하와 감사를 받는 날. 공식휴일이 아닌 나라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양성평등의 방향을 논의하는 행사들이 이어지는 날이다.

여성의 행복은 디자인에 있지 않다. 그건 정원 가꾸기와 같다.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는 살아있는 수고가 있어야 꽃이 핀다. 김주원은 바뀐 몸으로 제 어머니가 길라임에게 가하는 수모를 직접 당함으로써 어머니의 횡포가 가져오는 통증을 체감한다.

체험만이 객관성이라는 방어벽을 뚫어낸다. 현실에서도 제발 남자들이 여자가 되어 보는 기적이, 사회지도층 여자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수많은 이웃여성이 되어 보는 기적이 일어날 수는 없을까. http://38women.co.kr 을 클릭해 보시라.

그리하여 3월8일 여자가 되어 보는 시크릿 가든이 일어나길, 여자로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찾는 시크릿 가든을 만나길.

2011.3.8
경향신문
Posted by 여성의날 여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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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의 슬로건은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00여년 전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합 보장을 요구하며 뉴욕에서 시위를 벌인 데서 유래한다. 당시 노동자들이 외쳤던 것이 바로 빵과 장미였다. 

생존권을 빵으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장미로 은유하고 있는, 어쩌면 산업화 초기에나 어울릴 법한 상징이다. 이 상징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인 2011년 한국에 다시 불러오는 것을 3·8 여성대회 조직위원회는 주저하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이상 없고 지금은 오히려 남성차별 시대라는 과장된 주장마저 나오는 현실에서 아직 만족할 수 없는 빵과 장미의 현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 몇 가지만 떠올려보자.

올해 여성운동상 수상자는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성차별철폐 회원연대 그룹인 ‘너머서’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여성 참정권을 헌법으로 보장했지만 2010년까지 서울와이엠시에이는 여성에게 총회 회원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세계 1만여개 와이엠시에이 중에서도 여성에게 총회 회원권을 인정하지 않은 곳은 서울와이엠시에이가 유일했다. ‘너머서’는 2002년에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8년이 지난 올해 1월에야 대법원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 여성 참정권은 아직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돌봄노동은 또 어떤가? 청소노동자, 가사관리노동자, 식당노동자 등 대부분 여성이 일하는 돌봄노동 영역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최소한의 기본권인 노동권조차 얻지 못한 여성노동자의 수가 만만치 않다. 또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는 등의 발언으로 올해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된 강용석 의원과 스폰서 검사의 사례에서 보듯 성평등한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2011년판 ‘빵과 장미’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다. 망가진 레코드처럼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고 여성이 수행하는 직무의 가치는 낮게 평가되며,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 인권 현실은 아직도 열악하다. 보육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일·가정생활 양립이 어렵고 여성들은 각종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신자유주의 경제 아래 여성 빈곤화 역시 가속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귀 막는 오늘의 현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더는 여성문제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사회를 향해 우리는 ‘3·8 세계 여성의 날’의 존재와 그 의미부터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들리도록 여성대회부터 변신한다. 시민 속으로 들어가 시민과 함께 여성을 생각해볼 계획이다. ‘화이트데이 대신 위민스데이’ 캠페인은 국적 불명의 화이트데이 대신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고단한 삶을 함께 견디며 나아가는 우리의 어머니, 누이, 이웃인 여성들에게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기념하자는 제안이다. ‘허스토리 텔링’(herstory telling)은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오늘날 여성들의 삶의 맥락을 살피며 공감을 키워가려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의 헌신과 여성운동 덕분에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고 차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비정규직 차별 없애고, 최저임금 인상하라’, ‘가족친화적인 사내문화 확산하고,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하라’, ‘한반도의 화해협력 실현하라’, ‘여성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하라’, ‘이주여성의 체류권과 모권 보장하라’, ‘친고죄를 폐지하라’, ‘가정폭력 피해자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여성들의 외침은 계속 들려온다. 우리는 아직도 ‘빵과 장미’를 외쳤던 미국의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1908년 뉴욕의 그 광장에 서 있는 느낌이다.

Posted by 여성의날 여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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