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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역대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 소개 본문
제 1 회(1987년) : 권인숙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함으로써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성적 수치심을 극복한 용기로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억압의 현실에 눈뜨게 하는 주요한 힘이 되다.
제 2 회(1988년) : 맥스테크 노동조합
회사측의 불법적인 위장폐업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확보하고자 전 노조원이 한 몸이 되어 54일간의 농성을 전개, 기어코 위장폐업을 철회시키다. 여성으로서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는 사회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차별과 탄압을 견뎌냈으며 많은 노동조합과 여성노동자들에게 귀감이 되다.
제 3 회(1989년) : 피코노동조합 / 강정순 공동수상
1. 피코노동조합
다국적기업의 부당한 자본철수에 맞서 미국 현지 투쟁까지 조직적으로 실천하여 여성노동자 운동의 귀감이 되다. 특히 자국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외면하는 정부와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전국민적으로 알리고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대책의 시급함을 여론화했다.
2. 강정순
경찰관에 의한 강간을 폭로하여 사회문제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다. 특히나 묻어두기 쉬운 경찰에 의한 성폭력을 폭로함으로써 성폭력이 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범죄임을 각인시켜 여성계의 성폭력특별법 제정 요구의 배경이 되다.
<1990년 수상자 없음>
제 4 회(1991년) : 임수경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45년간 그 누구도 넘지 못한 분단의 경계선을 넘어 7천만 남북 동포의 가슴 속에 통일의지를 불어 넣었으며 여성이 통일운동의 주체임을 각인시킨 공로를 인정하다.
제 5 회(1992년) : 박영숙 / 김학순 공동수상
1. 박영숙
4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하여 이 땅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여성과 민중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성실과 청렴의 자세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의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의원’의 전형을 보여주다.
2. 김학순
어두운 역사 속에 파묻혀 있던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일본군‘위안부’ 범죄를 최초로 증언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4천만 남북 여성 모두가 정신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민족자긍, 자주의 파수꾼으로 떨쳐 일어나게 하다.
제 6 회(1993년) : 중소기업은행노동조합 여성정책실
여성조합원의 참여와 힘에 의해 여행원제 폐지. 신인사제도 폐지, 모범적인 여성조직 활동 등 은행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한 대중적 여성노동자운동의 모범을 보이다.
제 7 회(1994년) : 홍미영
인천시 만석동과 십정동 산동네에서 지역운동을 13년간 해오면서 지역여성운동의 발전에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10년간 지역운동의 산 체험을 바탕으로 지역살림에 대한 의정활동을 전개하면서 그 지역에 사는 정신대 할머니 생활보조금을 따내고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지역 주민의 의사를 의회에 반영하는 등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와 기반의 확대에 의미있는 전형을 만들다.
<1995년 수상자 없음>
제 8 회(1996년) : 도츠카 에츠로우 변호사
일본인 변호사로서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비인도적인 범죄이며 일본정부가 국제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공헌을 했다. 이러한 헌신적인 활동은 침략과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범죄와 인권침해를 해결하는 귀중한 밑거름이 되다.
제 9 회(1997년) : 이계경(여성신문사 대표이사)
1주 액면가 5천원의 주식으로 약 1천명의 주주를 모아 여성신문을 창간하여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주식회사 형태의 페미니스트 저널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여성신문을 창간함으로써 기성언론에서 소홀히 다루어지는 여성문제를 대안적인 여성언론으로서 여성의 입장에서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알려내고 여성운동의 쟁점을 여론화하였다.
제 10 회(1998년) :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변호인단 (박원순, 이종걸, 최은순)
‘현행법에는 성희롱이라는 처벌조항이 없어 법적소송이 불가능하다’라는 사회 현실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결성과 함께 이를 사회적 사건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성희롱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범죄’임을 사회적으로 밝혀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소송을 제기한 이후로 4년 반이라는 오랜 투쟁 속에서 무료로 공동변호인단으로 활동하였고 값진 승소판결을 얻어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전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제 11 회(1999년) : 강명순(부스러기선교회 협동총무, 빈민여성교육선교원 원장)
25년간 빈민지역에 살면서 빈민여성사회교육과 공부방운영을 통해 여성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IMF 경제위기로 인한 실직․위기 가정에 결식아동을 위하여 국내 최초로 아동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여 가족해체 예방에 기여하였다.
제 12 회(2000년) :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자(노조식당) 144명
IMF 구제금융 이후 전개된 성차별적인 구조조정의 부당성에 맞서 기혼여성이라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투쟁함으로서 자본주의의 세계화 이후 심화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였다. 또한 경제위기 이후 중고령 여성노동자에 대한 조기정년이 확산되는 사회적 현실속에서 이의 부당함을 조직적․사회적으로 부각시켰으며, 남성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여성의 단결된 모습과 비타협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조합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 13 회(2001년) : 윤정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동년배로서, 자신의 문제일수도 있었던 정신대 문제를 끈질긴 집념으로 조사․연구하고 사회 이슈화시켜 한평생을 정신대문제 해결에 앞장서오며 평범한 학자에서 운동가로 변신한 후 ‘오히려 이 문제로 인해 60이 넘어서 인생을 배웠다’는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우리 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도 침묵을 강요해 온 역사 다시 쓰기를 위해 76년의 세월을 다 바치고, 지난 2000년에는 국제법정 실행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일본 전 국왕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 14 회(2002년) :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1986년부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멸시와 모멸을 받으며 살아온 성매매된 여성의 치유와 사회적 복귀를 위해 소리 없이 일해 온 13개 현장단체들의 협의체로, 통계조차 없고 사회적 무관심에 방치된 성매매된 여성의 실태와 인권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내었으며 나아가 그들의 인권과 자립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소외된 여성을 따뜻한 사랑과 헌신으로 치유해왔다. 특히 군산에서 감금되어 노예생활을 하던 성매매된 여성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화재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 등 여성인권이 존중되며 또한 성매매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흔들림 없이 실천하였다.
제 15 회(2003년) :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 / 여성예술집단 ‘오름’ 이혜란 前 대표 공동수상
1.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
지난 1990년대부터 한국 페미니즘 예술활동을 주류무대에 진입시키는데 산파 역할을 맡아왔다. 문화를 선전, 선동의 도구로만 인식하던 시절, 문화를 통한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여성문화예술기획’을 시작하고 끊임없이 여성주의 문화코드로 대중을 만나려는 노력들을 해왔다. 그 결과 연극 ‘자기만의 방’, ‘무소의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마조네스의 꿈’, ‘마요네즈’, ‘밥퍼?․랩퍼!’, 등이 성황리에 공연을 진행했고, 그 결과는 여성주의 전용 문화공간인 극장 ‘마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또한 여성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진보적인 주체들과 함께 문화운동을 만드는 한편, 여성영화제뿐 아니라 여성미술제 등과 같이 여성들의 문화적 역량을 결집하고 펼쳐내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2. 여성예술집단 ‘오름’ 이혜란 前 대표
1980년대 여성운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여성문화운동계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성 높은 여성문화인이다. 1980년대 여성평우회와 여성노동자회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과 폭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사례극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큰 반항을 일으켰고, 노동자 교육을 위한 슬라이드, 노래 테잎 등을 만들어 노조를 지원하는 문화활동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그러한 노력은 1997년 여성예술집단 ‘오름’을 창단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기층 여성들의 문화활동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그룹이 드물었던 1990년대에 여성의 시각으로 여성노동자․여성실업자․가정폭력․환경문제 등의 주제로 공연물을 만들고 직접 대중을 찾아가 공연을 올리는 활동을 활발히 진행했다. 그 결과 여성운동을 대중화시키고, 여성운동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 16 회(2004년) : 최재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최재천 교수는 생명과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공생설’이라고 부르는 진화생물학이론을 통해 인간 세계에만 존재하는 부계혈통주의인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세포내에는 핵 이외에 세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이 있는데, 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암수의 유전자가 공평하게 절반씩 결합하지만, 핵을 제외한 세포질은 암컷이 홀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암컷으로 온다는 것을 호주제와 연결해서 부계혈통주의를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철저하게 암컷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전통적으로 남자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우리 족보와는 달리 생물학적 족보는 여성의 혈통만을 기록하므로,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다는 논리를 확산시켰다. 이처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일반론을 사회생물학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여론을 확산시킴으로서 호주제폐지의 정당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였다. 사이버테러에도 불구하고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의 요청에 의해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을 담은 호주제의 근간이 되는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과학자의 의견을 제출하여 호주제폐지의 긍정적 여론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제 17 회(2005년) :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노동조합은 대공장‧남성‧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에서 여성의 이해에 기초한 여성노동조합 건설의 과감한 시도를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여성 대중조직화의 한 모델을 제시하였다. 600만 여성노동자 중에 70%(420만)나 되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였다.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 이상이 비정규직종에서 일하고, 그 중 5%정도 조직되어 있는 현실은 업종과 지역에 관계없이 여성노동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전국단일노조 결성을 희망으로 선택했다. 이러한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1999년 8월 29일 전국여성노동조합은 400여명의 조합원을 중심으로 희망의 돛을 올린 이후 전국 10개 지역지부, 6개 업종회의, 70여개 분회 및 지회에서 5000여명의 조합원이 활동하는 역동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2000년 3월 ‘비정규직 여성권리찾기 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법적 권리 홍보와 상담으로 여성노동자를 지원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경험을 근거로 하여 법적인 권리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활동방식은 비정규직 사안의 특성과 전국단일조직의 특성, 그리고 노동조합 조직율이 낮은 우리사회 조건에서 법과 제도를 통한 보호 없이 여성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과 그에 따른 노력의 결과이다. 또한 위계적 지휘체계의 위에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중심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언니 리더십에 기초하여 영세사업체, 파출, 가내노동자 등 제도적인 틀 밖에 있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여성주의적 조직화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제 18 회(2006년) : 배옥병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
배옥병 대표는 학부모운동을 토대로 풀뿌리 여성운동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978년 여성노동자로서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된 이후 1980년대 최초의 공개노동운동조직인 ‘노동자복지협의회’를 창립하는데 기여했다. 1997년까지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20여년간 여성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배옥병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스스로 깨닫고 해결하는 힘을 갖출 때만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풀뿌리 지역운동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학부모로서 느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에 적극 참여하여 학교급식 직영전환 및 급식 모니터,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학교도서관 운영, 교복 공동구매, 졸업앨범 공개입찰 등을 성사시키고, 구로지역 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발전협의회, 남부교육시민연대 등을 구성하여 활동함으로써 학부모들을 조직하고 학교의 민주화와 학교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그간의 학부모 운동을 토대로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하고, 2002년 9월 총 99개 단체에 제안하여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연대회의는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정부 직영급식소 운영, 무상급식 실시의 3대 핵심사항을 요구하며 급식개선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2003년 11월에는 ‘학교급식법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를 출범하여 지금까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 자발적 조례제정운동을 전국적으로 연계․지원․통합해 온 학교급식운동은 학부모들의 참여 등 실질적 변화를 추동하면서 풀뿌리운동의 모델을 제시했다.
제 19 회(2007년) : KTX 열차승무지부
KTX열차승무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은 만연해 있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과 공기업에서마저 무분별하게 자행되고 있는 비정규직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KTX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상시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이며 대부분 남성으로 직접 고용되어 있는 열차팀장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자회사로 외주 위탁되어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심각한 차별을 겪어온 KTX 여승무원들은 성차별적인 모집채용과 채용 이후 누적되어 온 성차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2006년 3월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을 시작하면서 KTX여승무원들은 당사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공공부문의 무분별한 외주화,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문제, 철도안전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왔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한국철도공사의 성차별적 고용구조 개선 권고결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성차별적인 비정규직화에 경종을 울렸다. KTX 승무지부의 성과는 1년 가까이 파업을 지속해오면서 ‘나약하고 어린 여성들이 모여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냐’는 온갖 편견 속에서 한국철도공사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차별과 부당함에 현재까지 당당히 맞서고 있는 모습 속에 있다. KTX 승무지부의 투쟁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에 맞서 희망을 일구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을 보여주었다.
제 20 회(2008년)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수요시위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일본 총리 방한일정에 맞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여개의 여성단체들이 제안해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가지는 가장 큰 함의는 이 문제가 전쟁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의 대표적 사례라는 점에 있다. 또한 역사 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던 문제의 진상과 숨죽이며 지내야만 했던 피해자들의 삶은 사회가 여성을 보는 인식이 어떠한가를 대변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초기 ‘민족의 수치’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 앞에 여성들의 요구와 외침은 용기 있게 시작되었고, 이는 ‘수요시위’를 통해 더욱 확산되고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견인차라고도 할 수 있는 수요시위는 여성들이 조직하고 연대하며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여성인권운동의 대명사로서 16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이어 온 저력만으로도 여러 운동의 귀감이 될 만하다.
제 21 회(2009년) : 전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 한국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공동수상
전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은 이랜드사의 까르푸 인수 이후 더욱 심해진 비정규직 차별, 여성차별, 높은 노동강도, 노동조건의 악화를 견디다 못해 비정규직 고용보장과 차별시정을 내걸고 노동부 집계상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된 510일간의 파업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각종 생활고와 생계문제,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도 여성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끈기와 열정으로 마침내 승리한 전 이랜드 노동조합원들은 여성노동자와 노동조합들에 희망의 길잡이가 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1989년 창립된 이래 지속적으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친환경농산물 소비를 통한 농업․환경 지역을 살리는 활동들을 펼쳐왔다. 생협은 생산자․소비자의 신뢰구축, 친환경 농산물 홍보사업,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확대를 위한 캠페인사업,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확산을 위한 소비자 교육, 친환경 농산물 소비를 위한 정책제안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개선해 내고 지역 내 생협 활동이 뿌리 깊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여 풀뿌리 여성운동에 기여했으며, 지역여성들의 글로벌리더십 향상에도 기여했다.
제 22 회(2010년) : 없음
제 23 회(2011년) : 너머서 (前서울YMCA성차별철폐 회원연대)
<너머서>는 서울YMCA가 여성회원에게 총회회원권을 부여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성차별 관행을 바꿔내기 위해 8년여 간의 투쟁을 통해 여성의 평등권과 참정권을 획득하고 <너머서> 결성을 통해 활동의 영역을 사회운동으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종교계 성차별이라는 우리 사회의 성평등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했다.
제 24 회(2012년) : 전국민간서비스산업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1999년 학습지 회사들 중에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한 재능교육지부는 특수고용직으로의 노동 강도나 노동의 내용에 대한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항하여 5년 가까운 장기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성리더십의 평등하고 포용적인 긍정적 특성을 살려 흔들림 없이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시간이 경과할수록 오히려 투쟁이 더욱 조직적이고 단결된 모습으로 다른 여타 투쟁에 귀감이 되고 있다.
제 25 회(2013년) :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국내 최초 친족성폭력 수기 저자,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씨는 본인이 경험한 친족성폭력 경험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친족 성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왜 무관심한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특히 ‘친족성폭력’이라는 소위 ‘불편한 주제’를 통해 현대사회에서도 강고한 가부장제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은수연씨는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통념을 뒤집으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촉구하는 ‘성폭력 생존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제 26 회(2014년) : 대안적 운동의 주체로 우뚝 선 여성노인 ‘밀양할매들’
경남 밀양 인근 산속에서 10여 년간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맨 몸으로 고압 송전탑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내고 있는 ‘밀양 할매들’은 단순히 고압 송전탑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자를 희생시키고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려내면서 탈핵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할매들’은 주체적이고 집단화된 공동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운동의 방식 또한 기존의 정책, 협상 중심에서 자신의 삶과 터전을 지키며 일상에서 공감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연대의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한전이 전 국토에 765㎸ 고압 송전탑 902기를 설치하는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밀양 할매들’은 현 세대와 다음 세대의 공존을 위해 활동하는 이 시대의 여성운동가이다.
제 27 회(2015년) : 가사노동자 노동자성 인정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여성이 가정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무급 노동이었던 ‘가사노동’은 사회․인구학적 구조변화 속에서 유급 가사노동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는 노동관련법에 적용 제외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고, 노동가치는 저평가되고 있으며, 호칭도 직업이 아닌 파출부, 가정부 등으로 호명되어 왔다. 개개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사노동, 이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의 현실은 2004년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창립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전가협 출범 이전에는 가사노동자의 노동현실이나 노동자성 인정 여부가 사회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전가협은 출범 이후 지난 10년 동안 가사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가사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냈고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부대책이 발표되는데 기여했다.
제 28 회(2016년) : 수상자 없음
※ 특별상(2016년) :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10여년 간의 끈질긴 투쟁, 모두를 위한 또 다른 출발을 선언한 KTX 열차 승무지부
2004년 4월, 한국철도공사는 KTX를 개통하면서 KTX 열차 승무원을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1,000여명의 여성노동자는 계약직이라는 불안정 고용상태의 노동자였다. 이에 KTX 열차 승무원들은 2005년에 KTX 열차 승무지부를 설립하고, 2006년 3월 1일에는 KTX 열차 승무원이 단순한 ‘KTX의 꽃’이 아닌 승객의 안전과 열차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임을 선언했다. 또한 KTX 열차 승무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사회적으로 공공부문 외주화와 고용차별을 반대하는 상징적인 활동이 되었다. 이후 해고된 KTX 열차 여승무원 34명은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여 2010년에 원고 승소했으며, 2011년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승소했다. 하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고, 2015년 11월에 고법 공판도 종결되었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10여년 간 싸워 온 KTX 열차 승무지부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수많은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노동에 대한 사법부의 부실한 시각이 여실히 드러났고, 한국 사회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와 간접고용, 불법파견 등을 확산시키는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 29 회(2017년) : ‘디지털 성폭력’ 이슈화로 법∙제도 개선과 사회 인식변화를 이끌고 있는 ‘디지털 성폭력 아웃(Digital Sexual Crime OutㆍD.S.O) 프로젝트’
디지털 성폭력 아웃 프로젝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활발할 활동을 벌이면서 무려 17년 동안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던 소라넷을 폐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웹페이지 모니터링, 디지털 범죄 통계 생산, 범죄 모의 현장 적발과 경찰 고발을 통해 디지털 범죄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SNS계정을 통한 자료 공유와 기자회견을 통해서 디지털 범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중대한 사회문제임을 분명히 인식시켰다. 이들은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디지털성범죄를 근절하고 경찰의 미온적 태도를 변화시키며 나아가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고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새로운 운동방식과 끈질긴 투쟁을 통해 지난했던 디지털성범죄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디지털 성폭력 아웃 프로젝트는 여성운동 방식 및 이슈의 현재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특별상(2017년) : ‘강남여성살해 사건’ 이후 3만5350여개의 포스트잇을 써내려간 여성들
‘강남여성살해사건’이후 개인의 죽음 뒤에 가려진 구조적 여성혐오를 자각하고, 여성혐오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두려움과 울분을 나누며 공감과 변화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있다. 강남역에 써내려간 3만 5350여개의 포스트잇은 이내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구조적 대안을 고민하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자발적 연대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전국 각지에서 여성주의 공론장을 만들어냈고, 격동하는 정치과정에서 여성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성차별과 혐오에 대한 울분을 넘어, 공감과 연대로써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모든 여성들을 이 자리에서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제 30 회(2018년) :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징계는 불법” 최초 판결로 대법에서 승리하여 미투(MeToo)운동의 마중물이 된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
르노삼성자동차 내 성희롱 사건 피해자 박○○님은 2013년 6월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신고 이후 르노삼성자동차로부터 받은 불이익 조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하여 2017년 12월 22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사용자의 불리한 조치의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는 #MeToo 운동의 대열에 앞서 5년 전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하고 싸워온 박○○님의 용기있는 말하기가 있었다. 박○○님의 말하기는 #MeToo 운동의 마중물이다. 박○○님은 말하기에서 나아가 조직 내 여성을 압박하고 불리하게 대우함으로써 침묵시키고 배제하려는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여 마침내 회사의 책임을 묻고 직장 내 성희롱에서 피해자를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준을 이끌어냈다. 박○○님은 여성단체들과 연대하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구제 이후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확산시키고 대법원의 판결을 전체 여성들의 승리로 확장했다. 이는 성희롱, 성폭력 말하기에 나서는 여성들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제 31 회(2019년) : 고(故) 김복동님 / 서지현 검사 공동수상
1. 전시성폭력 문제를 국제적 인권이슈로 이끌어온 평화여성인권운동가 고(故) 김복동님
고(故) 김복동 님은 1992년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후, 같은 해 8월 제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전시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2000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천황과 정부의 유죄를 이끌어냈다. 2010년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발족했고, 2012년부터는 유엔 인권이사회를 비롯 미국·영국·독일·노르웨이·일본 등지를 해마다 수차례 방문해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에는 씨앗기금 5000만원을 기탁해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설립했고, 2018년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재일조선학교 복구를 위해 와병중임에도 직접 오사카 조선학교를 방문하여 기부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여성인권 실현과 전시성폭력 방지를 위해 헌신한 국제 여성인권단체나 활동가를 위한 ‘김복동 평화상’을 제정하여 초대 수상자로 전쟁폭력 피해 당사자에서 국제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난 ‘골든 우먼 비전 인 우간다’의 아칸 실비아 오발을 선정했다. 수 십 년 간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 온 김복동님은 전쟁 중 살아남지 못했거나 이름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의 상징이었으며,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평화 나비’가 되어 전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파한 평화운동가였다.
2. 검찰 내 성폭력 고발로 한국사회 폭발적인 미투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
201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 파도와 같은 이 거대한 물결은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한 뉴스에 출연해 상사에 의한 성추행 피해와 검찰 조직의 부당한 대응과 성차별을 고발함으로 본격화되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한국사회에서 모든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뉴스 인터뷰에 나왔다는 서지현 검사의 발언은 여성들에게 미투를 이어갈 용기가 되었다. 미투는 #미투운동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여성들은 #위드유로 화답하였다.
미투 운동의 마중물이 된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행보는 검찰 조직 변화의 시초도 마련했다. 서 검사의 폭로 후 꾸려진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는 법무·검찰 내 성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성평등정책 전담 부서 설치와 성평등 조직문화 제고를 위한 대책들을 권고했다. 서지현 검사는 “미투의 성공은 검찰의 개혁이 돼야 이루어질 수 있다”며 더욱 가열찬 검찰 조직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음해와 2차 피해에 시달렸다면서도 “진실은 이길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라며 “힘든 시간 보내는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기 위해 오늘도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 특별상 :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 거리로 나선 30여만 명의 여성들
2018년 한 해 30여만 명의 여성들이 혜화역과 광화문 광장에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편파판결 규탄시위’를 통해 불법촬영과 사법부의 불공정한 수사 관행을 규탄했다. 여성이 겪는 일상의 불안과 공포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30여만 명 여성들의 외침은 정부의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로 이어졌고, 경찰은 여성 대상 범죄 근절 추진단과 전담수사팀을 신설하였다. 또한 지난해 말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30여만 명의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생존과 안전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변화를 추동해냈다.
제 32 회(2020년) : 66년만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 낸 모든 여성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불법과 낙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간 임신중단이라는 자신들의 경험을 인권의 문제로,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낸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과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집회, 기자회견, 캠페인, 강연, 국제연대, 1인시위, 서명운동 등 각자의 자리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활동은 ‘낙태죄 폐지’가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고, 마침내 66년만에 실질적으로 낙태죄를 폐지시키고, 성·재생산 권리의 온전한 보장을 위한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2021년 : 3.8여성대회 미개최>
제 33 회(2022년) : 불안정 여성노동 현실 드러내고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 결정 이끌어낸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은 방송작가의 노동권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해 2017년 11월 11일 출범한 후, 방송작가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인 고용안정과 노동권 보장, 임금 현 실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공론화하고 개선의 목소리를 내며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2018년에는 대구 MBC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방송작가들의 원고료(임금)를 인상시켰다. 2020년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MBC에서 해고된 방송작가들은 2021년 3월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이는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중앙노동위원회 최초의 결정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또한 2021년 고용노동 부가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보도 및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중 363명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그 중 152명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내려지기까지의 배경에는 방송작가유니온의 큰 역할이 존재했다.
노동자의 다수가 20~30대 여성이 차지하는 방송작가 직군의 특성을 고려하면 방송작가유니온의 당당한 권리 찾기 운동은 곧 여성노동자의 권리 찾기 운동이다. 더 나은 노동환경을 기필코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방송작가유니온의 포부와, 용기와 희망을 동력 삼아 서로 연대하고 싸워나가는 방송작가들의 굳은 의지는 여성뿐만 아닌 모두가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큰 원동력이다.
※ 특별상 : 성별 다양성이 인정되는 성평등한 군대를 향한 길을 만든고(故) 변희수 하사
변희수 하사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으며 성별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이어나가다, 복무 중 소속부대와 협의하여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2019년 11월 성확정 수술을 받았다.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변희수 하사의 의지와, 변 하사의 지속적 복무를 지지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소속 대대와 군단이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육군본부는 그에게 여성이 아닌 남성 군인의 심신장애 기준을 적용하여 남성 성기가 없어 현역 복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이에 변 하사는 전역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성별 다양성이 인정되는 성평등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변희수 하사에 대한 육군의 조치는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며, 성확정 수술을 심신장애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있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고(故) 변희수 하사의 투쟁은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에 갇혀있는 한국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성별 이분법에 입각한 이성애 남성 중심적이고 차별적인 군대에 맞서 트랜스젠더 군인의 존재를 가시화했다. 지금 고(故) 변희수 하사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만들어낸 변화는 성평등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큰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