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성운동상] 2025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40회 한국여성대회

 

56년 만의 미투, ‘정당방위’ 재심 개시결정으로 60년 만의 정의 이끈 최말자

 

최말자 님은 1964년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상해를 입히게 되었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말자 님이 ‘피의자’가 되어 중상해죄로 6개월 여간 구속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당시 수사·사법기관은 “결혼하면 끝나는 일”이라며 최말자 님에게 가해자와 결혼할 것을 강요했고, 결혼할 수 없다면 가해자에게 돈을 주라며 폭언과 협박을 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키스를 하게 된 것은 피해자의 어느 정도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결국 최말자 님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고 가해자는 고작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을 뿐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가치관이 팽배했던 가부장적 제도의 시대, 성에 대한 그릇된 통념과 편견이 넘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말자 님은 부당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정당방위를 인정받겠다는 의지로 살아왔다. 60세가 넘어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여성의 삶과 역사, 인권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었고 학우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를 찾아 재심을 청구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과거 성차별적인 사법절차 때문에 발생한 자신의 피해를 고발하고 성폭력피해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존재와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언론 인터뷰, 좌담회, 강의, 캠페인 등 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연대를 통해 여성폭력 피해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드러내고 지연된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역할을 했다.

 

2020년 5월 6일 사건 발생 56년 만에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을 청구했다. 수많은 여성과 시민들이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서명, 기자회견 등에 함께 했고 ‘56년 만의 미투, 재심을 통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시민행동’을 구성하여 함께 연대했다. 그러나 2021년 2월 18일 기각 결정이 났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즉시항고,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기각 결정, 재항고 등 5년의 시간 동안 “내 사건을 바로 잡아야 후배 여성들에게도 억울한 일이 없겠다”며 여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투쟁했다. 마침내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졸지에 국가로 인해 성폭력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환되는 피해를 입은 지 60년 만에 재심 개시의 길을 열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었다.” 최말자 님의 용기와 많은 연대자들의 행동이 반성폭력 운동의 큰 이정표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여성혐오를 범행동기로 인정한 판례 이끈 온지구

 

온지구 님은 일명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다. 2023년 12월, 여느 날처럼 평온하게 일하던 일터에서 온지구 님은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손님으로부터 매우 심각한 폭행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며 폭행을 하고 기물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고, 이를 말리는 다른 피해자에게도 “나는 남성연대 회원이다, 같은 남자면서 왜 남자 편을 들지 않느냐, 저 여자는 폐미니스트다”라며 폭력을 가했다. 사건 직후 온지구 님은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했고 그저 불운한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은 연대자들이 숏컷 인증 릴레이를 하고 함께 행동으로 연대하는 것을 보며 용기를 얻었고 X(구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익명의 ‘A’가 되었다. 자극적인 뉴스와 악의적인 댓글, 생계와 미래에 대한 회복 강박 등에 시달리면서도 매 공판에 출석해 모든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 서울지역 6개 여대 학생들이 비상행동을 규합하고 나섰고 진주에서 경남으로 경남 지역을 넘어 전국의 여성들이 연대로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일이 모든 여성의 일임을 깨달았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적개심, 여성혐오에 기반한 폭력범죄, 인셀에 의한 테러범죄를 이제는 저지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나의 존재는 여성혐오범죄를 입증한다’

 

여성혐오범죄를 ‘묻지마’범죄로 호도하는 사회에 여성폭력 피해자로서 여성혐오범죄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연대자들과 기자회견, 집회, 1인 시위 등을 꾸준히 이어갔다. 결국 1년여 간의 분투 끝에 2024년 10월 15일 국내 최초로 “가해자의 범행 동기는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라는 판시와 함께 ‘여성혐오’를 비난할 만한 동기로 인정하는 판결을 이끌어내었다. 2024년 12월 30일 가해자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판례는 확정되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023년 신림동 공원 여성살해 사건 등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편견을 기반으로 한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 판례는 여성혐오를 범죄의 동기로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성인지 관점의 법, 정책, 제도에서의 변화를 촉진하고 진척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온지구 님은 재판이 끝난 후에도 여성이 온 지구 어디에서나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많은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고 딥페이크 엄벌 촉구 시위에도 참여하고 있다.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가 온지구 님의 용기가 되었고 그녀의 연대가 또 다른 피해자의 용기가 될 것이다. 온지구 님의 선한 영향력이 여성이 온 지구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앞당길 것이다.